한국 천주교의 상징
한국 천주교 서울대교구 본당 건물인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이며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이다. 고종 29년(1892)에 착공, 광무 2년(1898)에 준공되었다. 성당이 자리한 곳은 조선 정조 때 역관 김범우의 집터다. 당시 명동 일대는 지난날 명례방으로 불리던 곳으로, 정조 8년(1784)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래된 직후부터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공동체가 이루어졌던 곳이다. 또한 이 일대는 1830년대 이후 선교사들이 은거하며 비밀리에 신앙을 전파하는 선교의 중심지였다. 1845년 조선에 돌아온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가 활동하던 곳도 바로 명동성당에 이웃한 석정동이었다.
고종 19년(1882)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되면서 종교의 자유가 어느 정도 허용되자 당시 교구장이던 블랑(Blanc) 주교가 성당 부지로 이곳을 매입하여 종현 본당을 설립, 1887년부터 터 닦기에 들어가는 등 성당 건립을 추진하였다. 그 뒤 1892년 5월 8일 정초식을 가졌으며, 1898년 5월 29일 준공하여 축성식을 가졌다.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친 터전이다. 110년의 긴 역사 속에 우리 사회와 애환을 함께 나누며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오늘날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개발 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1970년대 이후 시대의 요구와 아픔, 민중의 눈물을 품어 이 땅에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모태와도 같은 곳이다.
공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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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명동2가에 있으며 종현성당 또는 명동천주교당이라고도 한다. 한국가톨릭교회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곳으로 순교 성인들의 유해를 모시고 있는 한국 가톨릭의 대표 성지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딕 양식으로 사적 제258호인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110년 동안 한국 근현대사의 영욕을 함께하며 이 땅의 빛과 소금이 되어온 명동성당은 지금도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영혼의 안식처다.
서울 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은 한국가톨릭교회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곳으로 순교 성인들의 유해를 모시고 있는 한국 가톨릭의 대표 성지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고딕 양식으로 사적 제258호인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명동성당은 1894년에 공사를 시작해 1898년 완성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조 교회당으로 순수한 고딕 양식 구조로 지어졌다. 군사 정권 시대를 지나면서 민주화 투쟁의 중심지로 더 많이 인식되어왔으나 지하 성당에는 엥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등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 거룩한 성지다. * 지하 순교자 묘역 1900년 9월 10일 베르뉘(Berneux) 주교 등 병인박해 시 순교하신 순교자들의 유해를 용산신학교로부터 성당 지하 묘소로 안치하였으나 이후 연고지로 옮겨 모셨다. 1926년 기해박해(1839년)와 병인박해(1866년) 시 순교자 79위의 영광스러운 시보식 후 복자들의 유해를 지하 묘소에 모신 후 대성당 좌측 회랑에 복자제대를 설치하고 79위 복자 성화를 모셨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성당이 인민군에 점거되어 지하 묘소에 안치 중인 순교자 유해가 손괴당하기도 하였다. 1991년, 퇴락한 유해의 포장, 부식된 납관 등을 새로 제작, 유해를 안치한 후 봉인하여 석관에 모시고, 이를 새로 말끔히 단장한 현실에 모신 후 각 현실마다 비명을 적은 석판을 세움으로서 마무리하였다. 수시로 순례자들이 참배할 수 있도록 묘역의 입구를 유리문으로 개조 설치하였다. 현재 모셔져 있는 성인 및 치명자의 유해는 기해박해 시 순교하시고 1984년 시성되신 성 엥베르(Imbert) 주교, 성 샤스탕(Chastan) 신부, 성 모방(Maubant) 신부, 성 김성우(안토니오), 성 최경환(프란치스코) 다섯 분의 성인과 병인박해 시 순교하신 파리외방전교회 Pourthie J. Antoine 신부, Petitnicolas M. Alexandre 신부 등 두 분과 무명 치명자 두 분 등 총 아홉 분이다.